2026년 6월 14일 - 죄에 대해 애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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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해 애통하라” 지금까지 비극적인 상황을 놓고 애통하는 것에 관해 살펴봤다. 하지만 성경은 또 다른 형태의 애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 자신과 세상 속의 죄에 대한 애통이다. 첫 번째 종류의 애통은 ‘외적인 파괴’에서 비롯하지만, 죄에 대한 애통은 ‘내적인 파괴’에서 비롯한다. 즉 이 애통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의 세상을 파괴시키는 죄에 대한 반응이다. 성경을 보면 죄에 대한 애통은 언제나 하나님의 복으로 이어진다. 이 원리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대 이스라엘이 다 함께 애통했을 때는 반드시 국가 전체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 어거스틴이 쓴 <고백록>에 이런 글이 있다. “내 죄가 구제불능이었던 것은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통감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깊은지를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눅 7:47). 고통스럽더라도 내 죄의 심각성을 직시하면 용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큰지 잘 아는 건 내가 그 긍휼을 받을 자격이 얼마나 없는지를 절실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애통할수록 용서가 더 감사하게 느껴지기에 더 성대한 잔치를 열 수밖에 없다.
다윗은 밧세바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 죄로 인해 다윗은 영혼이 짓눌리는 깊은 심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처절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편 32편은 다윗이 이렇게 애통하기 전의 상황을 기록한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다. ‘현실 부정’은 언제나 웃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영혼 깊은 곳의 상황은 180도 달랐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3-5). 당장은 죄를 부인하는 게 상책으로 보인다. 당장은 그게 가장 편하다. 하지만 그 길의 목적지는 괴로움의 땅이다. 반대로 죄를 직면하는 울퉁불퉁한 길이 최상의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죄를 직시했을 때 찾아오는 복을 경험해 봤는가? 그 후련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도망치고, 회피하고, 남에게 잘못을 돌리며 피곤하게 살아왔는가? 그렇게 도망치면 다윗처럼 기력이 쇠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니 외적으로 아무리 영양분을 보충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도망칠 곳이 없어져 멈추게 된다. 마침내 눈물이 쏟아지고, 그때 비로소 빠져나갔던 힘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힘은 우리 힘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감싼 하나님의 팔에서 흘러들어오는 힘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끝에서 가장 놀라운 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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