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 작은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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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면 올해는 감이 풍년인 것 같습니다.노랗게 익어가는 감을 보면서 가을이 깊어 감을 느끼게 됩니다. 감이 햇살에 노란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다움과 풍요함을 느끼며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 절로 감사가 나오며 마음도 풍성해 집니다. 작년만 해도 감나무의 감을 이렇게 늦게까지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노랗게 익기도 전에 다 따서 저장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혹시 다른 사람이 탐내어 감을 따가지 않을까 해서 미리 수확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올해는 감이 더욱 풍성하게 주렁주렁 열렸음에도 그냥 두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을 따서 먹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보고 기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몇 개의 열매가 짐승이나 사람으로부터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두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감나무 열매를 볼 때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그 열매를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길 가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열매에 감탄하여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에 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감을 따겠지만 그래도 한번에는 다 따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겨서 오랫동안 두려고 합니다. 이것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이웃을 위한 작은 배려가 먼저 나를 행복하고 풍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은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웃을 위한 배려가 없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고 우선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웃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 행복은 이웃을 위한 배려에서 오는 것인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고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한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데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작은 배려와 섬김으로 이웃을 기쁘게 할 때 오는 것인데,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이웃을 위한 작은 배려입니다. 깊은 사랑, 섬세한 사랑은 큰 것이 아닌 이웃의 필요나 기쁨이나 유익을 위하여 베푸는 작은 배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러 오는 세리들을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자기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발에 입 맞추는 여인을 배려하여 비난을 당하면서도 그대로 두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위하여 주님은 새벽에 불을 피워 떡과 생선을 올려놓으시고 베드로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셨습니다. 또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주님은 살리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녀를 배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시므로 모든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하셨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이웃을 위해서 큰 것이 아닌 작은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큰 기쁨과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큰 것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려에 감동하고 오래 기억한다고 하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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