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3일 - 예배 중단과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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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배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배만은 드려야 한다고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할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예배를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며 지켜왔는데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는 현실 앞에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 또한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되어 진 일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일에는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일까? 하고 깊은 생각에 시름을 할 때 마음으로 오는 것은 “어찌하여 이 상황을 예배 중단으로만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모이는 장소가 교회에서 가정으로 그 형태가 달라졌을 뿐 중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로 사도 외에는 다 흩어져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오히려 더 경건한 예배를 드려 성령이 충만함 같이 우리도 그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박해로 유배지인 무인도 밧모섬에서 그의 제자와 함께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다 주님을 만나고 장차 속히 되어 질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신 내용은 예배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것보다, 성도가 얼마나 모이느냐 모이지 않느냐? 그리고 재정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 심지어 주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 하는 것조차도 별 의미가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며 바로 우리에도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교회에 분명하게 환난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존재가 되어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나 각 개인의 신앙은 그 중심을 잃고 많은 영적 혼란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경건한 존재가 되어 자기의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당국의 명령을 따르면서 믿음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을 하던 차에 초대교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예배를 드렸는가? 생각하다가 무인도인 밧모섬에 유배된 가운데서도 예배를 드린 사도 요한이 생각이 났고, 주님은 그 예배 가운데 나타나셔서 환난에 처한 교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셨음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교회와 언제나 함께 계시며, 모든 교회 형편을 다 아실 뿐 아니라 각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세상 나라는 결국 망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라고 말하므로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무인도 유배지에서 그의 제자와 단 둘이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주님을 만나 계시록을 기록하였고, 박해자는 곧 살해되었지만 요한은 그 후 20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는 승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사도 요한처럼 가정에서 드리는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통해 주님이 주실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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