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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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서 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왜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씀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비유를 하시게 된 동기와 또한 비유의 내용을 알아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하게 된 동기는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말씀을 하신 후에 이 비유를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구원을 완성하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오실 때에 세상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시면서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그 믿음은 온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멸망이 올 때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는데 구원받은 노아와 롯과 같은 믿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준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롯은 소돔의 악을 보면서 거기에 휩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외롭게 성문에 앉아 탄식하며 나그네의 모습으로 지나가는 천사를 강권하여 대접하는 이웃을 섬기는 믿음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믿음의 특징은 세상의 물질이나 쾌락에 자신을 내어 주지 않고 외롭고 힘들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둘을 말씀하시면서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목숨은 “세상과 육체적인 욕심에 자신을 내어 주느냐, 내어 주지 않느냐?” 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은 진리만을 위하여 살아가므로 우리를 박해하고 빼앗고 욕하고 죽이는 원수들이 있을 때에 변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께 그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낙심하지 않고 밤낮으로 항상 기도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있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즐거움이나 물질의 욕심으로 변질되거나 핍박과 고난으로 인하여 변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안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물질과 주님을 함께 소유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갈등을 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늘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살려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버려야 하는데 그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당하게 살아도 당장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도 거의 모두가 자신과 같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영혼에 내성이 생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 말씀을 단순하고 순전하게 믿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약속만을 그대로 믿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어 주님이 오셔서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 우리들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남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잠잠히 기다리심은 이 어두운 세상인 이때야말로 진정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있는지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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